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 소방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고 현장에서 동료들의 안전에 더 신경쓴다고 한다. 그만큼 밥 한끼 같이 한다는 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일지 모른다. 한때 밥 한 번 먹자는 말처럼 흔하고 쉬운 인사말이 있었을까? 말만 오가고 흘러가버린 식사자리만 한 트럭인데, 이제는 지나가는 말이라도 밥 먹자는 말은 쉽게 꺼내기 어렵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사적 모임에도 제한이 생기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식사할 기회가 크게 줄었다. 온라인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유대감, 그 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채울 수 있을까?
집들이만 250번 할 만큼 홈파티를 좋아했던 에리카팕은 코로나 이후 1인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함바데리카'를 기획했다. 오랜만에 함께 마주앉은 한상이 차려지고, 음식을 가로지르며 오고간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다. 온라인으로만 연결되어있던 ‘랜선친구'들이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날. 소속이 있어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부유하던 마음이 단 한끼를 함께 했을 뿐인데 ‘함바데리언'이라 칭할 만큼 돈독해졌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관계의 당연한 시작이 된 뉴노멀 시대이지만, 이렇게 작은 단위로나마 실체 있는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스몰게더링이 일상 곳곳에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나아질까?
글 | 이혜민
#요리연구가 말고 요리먹구가
인스타그램에서만 보던 에리카님의 집에 드디어 오게 됐네요. 요즘사 구독자 분들께 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요리먹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에리카팕이라고 합니다.
요리먹구가, 에리카팕. 처음 듣는 분들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우선 이름이 에리카팕이잖아요. 본명인가요?
본명은 박지윤이에요. 동명이인 유명인들이 너무 많으셔서 영어이름인 ‘에리카'를 쓰기로 했는데, '에리카 박'도 유명한 오픽 선생님에 계시더라고요. '팕'은 안 계시지 않을까 해서 '애리카팕'이라고 활동명을 만들었는데, 많이들 ‘닭’으로 헷갈려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우리 초면이 아니잖아요. 몇년 전 독립출판 창작자로 처음 만났었고, 요즘사 초창기에 여러명이 함께 출연하는 인터뷰 코너에도 등장을 하셨었죠. 그때 에리카님은 다양한 부캐를 가진 회사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작년 7월에 퇴사를 했어요. 지금은 주로 요리를 기반으로 한 워크숍들을 진행하며 보내고 있어요. 보통은 제가 요리를 차려드리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고요.
요리라는 장르로 진출(?) 해서 신기했어요. 그래서 직함을 ‘요리먹구가'로 소개해주신 거죠? ‘요리연구가’가 아니라 ‘요리먹구가’라고 붙인 이유가 있나요?
요리연구가라고 하기에는 기라성 같은 요리연구가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제가 그런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그렇더라고요. 연구까지는 아니지만 '먹구 가시는' 정도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요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저는 같이 게더링해서 이야기 나누는 데서 굉장히 큰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리먹구가'라고 제가 저의 직함을 만들어줬어요.
#요리로 연결되는 1인 소셜다이닝
에리카님에게 정말 잘 어울리고 귀엽고 멋진 직함인 것 같아요. 안그래도 오늘은 그 ‘요리먹구가'의 정체성으로 하시는 일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이번 달에 저희가 다루려는 주제는 이런 거예요. 요즘 ‘고립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팬데믹 이후에 더욱 더 각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같이 모이는 기회도 사라졌죠. 그럴 수록 이렇게 작지만 새롭게 모여서 연결되는 것이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까 잠깐 말씀해주신 것처럼 에리카님은 요리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모임을 하고 있으시잖아요. 어떤 모임인가요?
제가 작년에 퇴사를 하고 요리를 좋아하다보니 외부에서 요리 워크숍을 많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또 코로나가 더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되면서 밖에서 적극적으로 요리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죠. 고민하다가, 그럼 집으로 모셔야겠다 한 거죠. 방역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두 분씩 초대해서 제가 밥을 차려드리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름하야 ‘함바데리카'라는 프로젝트예요.
‘함바데리카’라는 이름도 특이한데, 어디서 시작된 이름인가요? 함바데리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함바집'과 ‘까사데리카'의 데리카가 합쳐진 단어예요. 함바집은 요즘에 잘 쓰는 표현은 아니죠.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밥 드시는 곳을 예전에 함바집이라고 많이 했거든요. 그게 일본말에서 기인한 단어이긴 하지만, 저는 함바집이라는 어감이 예스럽고 좋더라고요. 그리고 함바데리카의 슬로건은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가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함바집'이에요. 제가 퇴사하고 만난 친구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해 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거든요. ‘이 친구들을 위해서 밥을 차려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함바집을 하되, 여성분들을 모시니까 좀 예쁘게 차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함바데리카'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졌어요.
이런 프로젝트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제가 7년 동안 회사생활을 했는데요. 남들 보기에 좋은 회사이긴 했지만, 저에겐 만족스럽거나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어요. 회사원으로서 늘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항상 있었죠. 그리고 저에게 어린 조카들이 네 명 있는데요. 저희가 어릴 때도 그랬지만, 미디어에 나오는 직업만 직업으로 알고 크기 마련이잖아요.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되게 많은 직업들이 있는데 그걸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근데 제가 마침 퇴사도 했고,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밥을 해주는 건 제가 워낙 잘 하던 일이니까요. 이런 것들을 다 모아서 어떻게 해볼까 하다가, 한 번은 친구랑 밖에서 밥을 먹는데 친구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밥을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것으로 대충 때우듯이 먹는다는 거예요. 저는 ‘요리먹구가'로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내가 밥을 해줄테니까 집으로 오라고 했더니 친구가 ‘아니 너네 집이 무슨 함바집도 아니고 밥을 먹으러 가냐' 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 제가 바로 ‘어?! 그럼 내가 함바집을 할게!’ 라고 했고 그렇게 ‘함바데리카'가 탄생했죠.
참여할 사람들은 어떻게 모집했나요?
인스타그램에 ‘제가 밥을 해드릴테니 대신 일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라고 올렸어요. 작년 8월에 인스타그램 DM을 통해서 신청을 받았고, 지금까지 20번을 진행했어요. 평소에도 제가 인스타그램에 밥 해먹고 친구들이랑 게더링하는 것들을 자주 올렸기 때문에 ‘저도 먹고 싶어요, 저도 껴주세요' 같은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꽤 있었거든요.
밥 차려주고 이야기 나누는게 보통 일이 아닌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저한테는 밥 차려드리고 이야기 나누는 건 너무 쉬운 일이거든요. 고단하지 않은 일이라서 힘들진 않았어요. 하다보니까 요령도 생겼고요. 제가 원래 친구들을 초대했었을 때는 양식, 이탈리안 요리 위주로 해주다가 ‘함바데리카'를 기획하면서는 한식에도 기웃거려보게 되어서 제 음식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어서 좋았죠.
사실 저도 에리카님 인스타그램에 ‘저도 먹고 싶어요' 같은 댓글을 달았던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사실 1인 가구가 요리하는 게 쉽지 않다보니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평소에도 홈파티를 엄청 많이 했었잖아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정확한 횟수는 기억이 안나지만 누가 물어보면 집들이만 250번이 넘는다고 이야기해요. 처음 시작은 제가 독립출판을 하면서였어요. 책이 나오면 친구들이 책을 사주는데, 저는 그게 미안해서 출판기념회 겸 집들이로 책 사준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주기 시작한 거죠.
책이 대체 몇 권인데 출판기념회를 250번을 한 건지...?(웃음)
책은 세 권이 나왔는데... 사실 책값보다 밥값이 더 나왔죠.(웃음) 근데 제가 그 과정에서 요리라는 걸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저도 다른 1인 가구들처럼 주방도 좁고 해서 집에서 요리는 잘 안했어요. 그러다가 이 모임들을 하게 되면서 이왕 할 거 좀 있어 보이게 하고 싶으니까 다양한 시도를 했죠. 한번 게더링하고 나면 친구들도 너무 흡족해하고 저도 만족스럽더라고요. 그렇게 홈파티 경력이 쌓이게 됐고 지금은 아마 함바데리카 포함해서 300번이 넘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느낀 건, 메뉴는 똑같아도 나누는 이야기는 계속 달라진다는 거였어요. 이걸 아카이빙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아마도 이 생각이 함바데리카의 기획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지금 함바데리카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다 기록을 하고 있어요. ‘에리카팕의 중구난방'이라는 뉴스레터를 통해서 콘텐츠로 릴리즈 해보고 있어요.
#트랙 밖에서 찾은 소속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는데요. 함바데리카에는 어떻게 초대받을 수 있는 건가요?
우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신청을 먼저 받았고요. 그 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가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함바집'이라는 컨셉에 맞게 자신의 일과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할 마음이 있으시분들을 모셨죠. '제가 이걸 아카이빙해서 콘텐츠로 만들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사진과 영상을 찍어도 괜찮으시겠어요?' 같은 몇 단계의 ‘괜찮으시겠어요?' 사이퍼를 거치고 난 분들이 저희 집에 오세요. 그리고 두 분씩 초대를 하다보니, 같이 신청하지 않은 이상 여기서 처음 보는 사이가 굉장히 많은데요. 각자 신청 했는데도 만나고 보면 신기하게 결이 비슷하더라고요. 공통점이 뭐라도 있어요.
함바데리카에 초대되면 어떤 절차를 거쳐서 식사를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나요?
모두가 초면인 경우는 특히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제가 문을 열 때부터 재미난 안경을 끼고 맞이해드려요. 들어오실 때부터 ‘어머~’ 이렇게 극 하이텐션으로 맞이하려고 해요.(웃음) 모임 초반에는 함바집 하면 떠오르는 예스럽고 식당 이모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분홍색 두건을 두르고 있기도 했어요. 푸근한 느낌으로 들어오실 수 있게끔 하는 거죠. 웰컴드링크로 옛날 델몬트 병에 담은 보리차를 준비해드리고요. 메인 메뉴도 함바집 콘셉트에 맞게 된장찌개, 흰 쌀밥, 제육볶음, 들기름 김치볶음과 쌈을 제가 동묘에서 산 그릇들에 잘 세팅해서 내어드려요. 그렇게 식사부터 맛있게 하고, 마지막 메뉴가 애호박전이에요. 애호박에 물을 넣지 않고 삼투합현상에 의해서 나오는 애호박의 수분만으로 만드는 거여서 저는 이 메뉴를 ‘애호박의 눈물'이라고 부르는데요.(웃음) 애호박의 눈물을 같이 드시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일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요.
함바데리카에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한 번에 두 분씩 초대했으니까 지금까지 40명 정도가 오신 건데 정말 다양해요. 극단에서 활동하시는 배우분부터, 작사가, 다큐멘터리스트, 노무사, 일러스트레이터, 무용가도 오시고요. 마케터나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직장인 분들도 많이 오셨죠. 막상 신청을 받았는데 하는 일이 천편일률적이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었는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전부 다른 직업인 분들이 오셨어요.
만나게 되면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게 되나요? 에리카 님이 인터뷰 형식으로 질문을 좀 준비해오시는 건가요?
신청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밥을 먹으면서 가볍게 사전 조사를 좀 해요. 그리고 애호박전을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죠. 필수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은 ‘그 일을 원래부터 하고 싶으셨어요?’ ‘예전에 꿈은 뭐였어요?’ ‘그럼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어요?’ 같은 거예요. 그러면 보통은 대학교 때나 어린 시절에 어떤 계기가 있어서, 혹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우연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게 됐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대화 말미에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계속 일을 해보고 싶은지를 묻기도 해요. 근데 대부분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어” “내가 너무 잘난 사람이야" 하는 분들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런 고민이 있어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있는데 이게 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하는 분들이라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진로 고민은 평생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요. 처음엔 조카들에게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다양한 직업군의 분들을 모셨던 건데, 만나고보니 저와 같은 2~30대 모두가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어요. ‘이런 시점에서 이런 고민을 했기 때문에 이 분이 지금 이런 삶을 사시는구나’ 같은 것도 캐치할 수 있었고, 제가 되려 얻는 인사이트들이 많았죠.
요즘에는 회사를 다녀도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나?’ 싶고, 나는 분명 소속이 있는데 소속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회사를 다니고 있고, 또 아무리 복지가 좋고 좋은 간판을 가진 회사를 다니고 있어도 거기에서 나로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만족이 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90년대생들의 경우에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메시지를 보면서 나로 살기도 해야 되고, 또 보고 자란 건 아버지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처럼 안정적으로 살기도 해야될 것 같은 분위기 사이에 끼어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려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 같고요.
그런 혼란을 겪다보니 정해진 트랙 위에서 만들어진 소속을 벗어나서 ‘나랑 통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 ‘이런 말을 좀 터놓고 얘기할 곳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 많은 것 같은데, 함바데리카 신청하신 분들도 그런 연결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따로따로 신청을 주셔서 여기서 초면인 경우에도 얘기 나누다 보면 서로 공감을 하게 되거든요. 완전히 다른 상황인 경우도 있었어요. 한 분은 탄탄대로의 대기업에 다니시지만 요리 프로젝트가 하고 싶은 분이랑, 한 분은 고졸이신 분이 같이 오신 적이 있어요. 서로가 가진 고민이 되게 다른 거죠. 그런데 두 분이 대화를 하게 하니까 제가 딱히 모더레이팅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런 삶이 있구나’ 하면서 거기서 오히려 위로를 얻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내가 가진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잖아요.
내가 있는 세계만이 유일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그 안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세계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희망을 갖게 되고 덜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밥을 차려드리면서 느꼈던 함바데리카의 순기능은 오늘 여기서 초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친구이랑은 조금 오글거려서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일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당위성 있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구나' 하면서 자신이 가진 장점이나 보석을 그제서야 발견할 수도 있고 그렇게 각자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매번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에리카님 스스로도 정서적으로 채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제 MBTI가 ENFP인데요. 제 친구들이 가끔 저에게 ‘너는 EEEE같다'고도 할 만큼 저는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가 생성되는 성향인 것 같아요.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윙크하고 끼부리면서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에서 만족감을 느끼거든요.(웃음) 최화정 성대모사 같은 거 하면서 쇼맨십을 대방출하는 것에 적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모임을 진행할 때도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이걸 통해서 사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사람이 7년 동안 컴퓨터 앞으로 출퇴근하면서 조용히 살았다니. 그래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방출하고 계신다니 다행이에요!
그러니까요. 기다려라 세상아!!
#같이 먹는 밥 한끼의 힘
재택근무하는 친구가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있는 것을 보고 거기서 함바데리카가 시작되었다고 했잖아요. 저는 그 이야길 들으면서, 밥을 못챙겨 먹는다는 것이 개인적인 건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도 문제란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누구라도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때우듯 먹진 않을 거잖아요. 온라인으로 근근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같이 밥 먹는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의 끈끈함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꼭 밥이 아니더라도, 작더라도 뭔가를 나눠먹을 수 있는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해요. 저희 함바데리카에 오셨던 분 중에 주로 오프라인 워크숍을 진행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그런 결핍이 되게 심했대요. 오프라인으로 만나면 조그만 쿠키라도 가져와서 서로 나눠먹고 그런 정이 있었고, 그렇게 뭐라도 나눠먹은 사이는 온라인에서도 그 관계가 계속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부터 온라인 클래스로 시작한 사이는 딱 수업만 하고 끝나면 관계가 계속 되기 어렵다는 거예요.
필요한 것만 얻고 끝나게 되는 관계가 많죠.
물론 온라인 클래스에서 만나서 계속 이어지는 수강생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확실히 뭔가를 나눠먹은 정, 그 느낌은 대체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대체될 수 없는 감각을 지금 우리가 느끼기 너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죠. 인터뷰 준비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외로움이라는 게 질병 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거기에 대한 처방 중 하나가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 얘길 보고 딱 에리카님이 떠올랐거든요. 이미 처방 중이었던 거예요.(웃음) 이것에 대한 증거로 실험을 했는데, 소방관들이 같이 밥을 먹었던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가 다르다는 거였어요. 같이 한 번이라도 밥을 먹었던 사이면 사고 현장에 가서 동료에 대한 안전을 조금 더 신경쓴다는 거죠. 그만큼 밥 한끼 먹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바데리카 오신 분들도 그 전에는 만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밥 한끼로 크게 가까워진 느낌이 든 적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되게 많아요. 총 41명이 오셨는데, 그 중에 절반이 진짜 ‘생초면'인 분들이었어요. 아니면 온라인에서만 알던 인친, 랜선친구 였다가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뵙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밥 한 끼 먹고 난 이후에 진짜 돈독해져서 ‘우리 또 만나요~’ 이렇게 하게 되거든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를 설명하려면 온 인생을 설명해야 하거든요. 그런 인생 이야기들을 밥을 같이 먹으면서 딥하게 하니까 그게 모여서 되게 많이 친해지는 것 같아요. 함바데리카에서 만난 분들은 다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고, 엄청 서로 그리워하는 그런 사이가 돼요. 사실 동창들도 매번 학교에서 만나더라도 서먹해질 수 있는데, '함바데리언' 분들은 그 유대감이 저랑도 금방 생기고 그때 만난 분들과도 금방 생겨서 다른 차수 분들을 서로 만나고 싶어해요. 코로나가 종식되면 제가 가장 먼저 해야되는 일이 함바데리언 분들을 모시고 포럼 같은 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얘길 듣다보니 저도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는 앞자리가 I의 성향이 강해서 다같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 생각은 코로나 전에도 해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다니다보니 저희 채널에 나오셨던 분들끼리 서로 만나고 싶다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그런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게 저희의 큰 숙원사업이기도 해요.
맞아요. 한 자리에서 만나지 못했어도 어쨌든 같은 연결고리가 하나 생기니까 내적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창 소셜다이닝이 유행을 했었잖아요. 그것의 배경도 지금처럼 1인 가구들이 많아지면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보니 같이 모여서 밥 한 끼 해먹자 라는 취지였죠. 그때는 코로나 전이니까 열댓명씩 모여서 같이 밥을 해먹을 수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함바데리카 같은 방식을 보급해야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1인 소셜다이닝'이랄까요. 작게 모이지만 지속 가능하게 연결되는 느낌? 다 같이 모이지는 못해도 나노 단위로 이렇게 연결을 만들어간다는 게 이 시대에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 중에도 ‘우리도 저렇게 모여봐야겠다' 하실 것 같은데, 요리가 아닌 다른 장르더라도 이렇게 모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맞아요. 지금 드는 생각은 칵테일이라도 같이 만들어서 한 잔씩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런 모임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주제를 갖고 모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모이면 뭐부터 이야기 해야 하나 싶고 서로 할 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대주제가 있으면 그걸 위해서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니까 짧은 시간이더라도 더 딥하게 친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가격의 허들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함바데리카는 무료로 진행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무료라고 공지해두지 않았거든요. 정말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나중에 ‘사실 무료다’ 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스터디 모임할 때 디파짓을 두듯이 그런 룰을 정해놓으면 모임에 진심으로 참여할 의향이 있고 기여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 처한 이런 고립감,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그 방법 중 하나로 함바데리카 같은 스몰 게더링, 작은 모임과 새로운 연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문득 에리카님 개인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더라고요. 항상 하이(high)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에리카님이지만, 원래 하던 일에서 오는 소외감이 늘 있었다고 했잖아요.
저의 원래 꿈은 카피라이터였어요. 말장난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명도 멋지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어쩌다보니 저는 개발자가 돼있었어요. 첫 직장이었던 병원 전산실에서 2년간 데이터 만지는 일을 했죠. 그 이후 이직을 했지만 큰 회사는 그 사람의 적성을 보고 부서 배치를 하지 않거든요. 무조건 TO대로 지금 이 자리가 났기 때문에 나를 끼워넣는 식이었죠.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이 회사랑 어울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회사를 가기에도 어울리지 않고. 이런 생각이 들 때 분출구처럼 처음 찾게 된 게 독립출판이었어요. 에리카팕으로 쓴 저의 첫 책 <웃픈>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그냥 이 자리에 새우 한 마리가 필요해서 들어간 새우 같다고. 나는 TO가 날 때 TO를 채워주는 그냥 머릿수 하나구나. 거의 7년 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었죠.
그런 마음으로 되게 오래 버텼네요.
취준할 때는 뭐라도 되기만을 바라잖아요. 합격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기쁨도 있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취준하시면서 뭐라도 되는 것 때문에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외로운 감정을 독립출판으로 분출해오다가, 이제는 요리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해소하고 있는 거네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떠오른 건데, 제가 최근에 <완다비전>이라는 마블 영화를 봤거든요. (*스포주의) 주인공 완다가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고 극식한 외로움을 겪다가 내면의 세계가 팍 분출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거든요. 제가 에리카팕이 된 것도 그것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요리를 하게 된 것도, 책을 쓰게 된 것도, 춤을 추게 된 것도(에리카는 종종 댄스연습실을 빌려 춤을 추는 취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시작은 어떻게 보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외로움이 근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군요. 이 이야기야말로 오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것 같아요. 함바데리카 시즌2도 하나요? 또 이렇게 사람들과 연결되고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다른 기획이 있으신가요?
함바데리카를 하면서는 직업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났잖아요. 그분들이 많이 해주신 얘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대부분 대학생활 동안 전공과 상관없이 어떤 대외활동을 하고 그 시기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여행을 했느냐에 따라서 지금의 삶에 되게 영향을 많이 끼쳤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는 이제 대학생들의 얘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숙집처럼 이번에는 ‘하숙데리카'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하숙집 이모처럼 더 화려한 패턴 옷을 차려입고, 분홍 소시지나 잡채를 이만큼씩 해놓고 대학생들을 초대해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하숙데리카로 만난 친구들을 실제 직업을 가진 함바데리카 분들이랑 연결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 에리카팕이 추천하는 ‘스몰게더링’을 위한 메뉴
허니버터 문어 스테이크와 샹그리아재료 : 마트에서 파는 자숙 문어, 식초, 설탕. 버터, 다진마늘, 꿀 / 자숙문어를 사서 칼집을 내주고 식초 한 수저, 설탕 한 수저를 넣은 끓는 물에 5분 정도 더 데쳐줍니다. 팬에 버터를 양껏 녹여주고, (문어다리 하나당 에어팟케이스 하나 크기의 버터를 넣어주세요) 다진 마늘도 아빠 수저로 크게 떠서 넣어주세요. 마늘이 노릇하게 익으면 꿀을 넣고, 데친 문어를 팬에 넣어 1분 내로 볶아주면 완성! 샹그리아는 5.3.2를 기억하세요! 와인 잔에 얼음을 반 정도 채워주고, 와인 5 : 오렌지쥬스 3 : 사이다 2 비율로 채워줍니다. 5초 컷으로 초간단하게 만들었지만 여기가 스페인인가 싶을 거예요. 😉
참토레루케 (참치 파스타)재료 : 스파게티면, 소금, 허브솔트, 올리브유, 마늘, 참치캔, 토마토, 레몬, 루꼴라, 케이퍼, 핑크페퍼 /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편 마늘을 익혀 마늘기름을 내줍니다. 마늘이 노릇하게 익으면 기름 뺀 참치를 넣어주고요, 8조각 낸 토마토, 케이퍼 두 수저, 준비한 루꼴라의 반을 팬에 차례로 넣고 레몬 반개 즙을 넣고 계속 볶아주면 소스는 완성입니다. 삶은 면을 소스에 넣고 볶아준 뒤 남아있던 반 정도의 루꼴라는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에 버무려 위에 데코로 올려줍니다. 남은 반개의 레몬을 슬라이스로 잘라 올려주고, 핑크페퍼로 장식해주면 완성! 지중해 바다 수영을 요트 위에서 먹는 상상을 하면 더 꿀맛이에요~
interviewee 에리카팕
본명은 박지윤. 언젠가는 유명해질 자신에게 독보적인 이름을 주고 싶어 '에리카팕'이라는 활동명을 만들었다. 7년 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웃_픈>, <우_잉>, <도시시> 등의 책을 출간해온 독립출판 작가.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출판계에서는 책보다 춤추고 요리하는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해방촌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쿠킹 원데이 클래스 '잇어빌리티'를 진행하면서 '요리먹구가'의 정체성이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직장생활을 졸업하고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함바데리카'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에리카팕의 중구난방'이라는 유료 뉴스레터로 발행하고 있다.
interviewer 혜민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토리파인더'라는 직종을 스스로 붙여주었다. 직장인으로 6년, 프리워커로 6년째 살고 있다. 서른이 되던 해 결혼식 대신 짝꿍과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42일간 함께 걷고 돌아와 부부이자 동료가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를 꾸리고 책과 영상을 넘나들며 새로운 선택지를 탐구하는 콘텐츠를 만든다.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동명의 인터뷰집을 펴내는 에디터이자 작가.
𝘽𝙀𝙏𝙏𝙀𝙍 𝙉𝙊𝙍𝙈𝘼𝙇 시리즈는 뉴노멀보다 더 나은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매달 새로운 주제, 매주 새로운 인터뷰로 찾아옵니다.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저작권법 보호조치에 따라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