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몇 번의 검색 만으로 ‘하우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진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은 그렇게 얻어지지 않는다. ‘시간 관리하는 법', ‘취향 만드는 법', ‘사이드 프로젝트 잘 하는 법' 같은 어떤 기가막힌 방법들이 있을 것 같고, 이제 그걸 그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내 삶도 멋지게 바뀔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잘 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직장인이자, 자신만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딴짓러 무과수. 그가 하는 다양한 일들은 모두 자신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특별한 것보다는 보통의 일상 속에서 빛나는 것을 잘 찾아내고, 그렇게 쌓인 자신의 이야기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잘 사는 ‘방법’이 아닌 삶을 대하는 좋은 마음과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휩쓸리듯 살아가던 일상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 가져오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므로.

 글 | 이혜민


#일과 딴짓의 경계를 넘나들 때

무과수님은 회사도 다니면서, 작가이자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있잖아요. 주로 해오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거예요?

첫 시작은 2019년도에 <무과수의 기록>이라는 독립 출판물을 내면서 외부 활동을 시작을 했고요. 그때 감나무 집에 살고 있었는데, 집이 크기도 해서 ‘우리 집으로 놀러 오세요’라고 인스타에 올려서 집에 사람들을 초대를 했어요. 그때 어떤 잡지 에디터 분께서 그게 신기했는지 인터뷰를 처음 하게 됐고 그렇게 집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외부 사람들과 같이 하는 나름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였죠. 그 뒤로 강연도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다가 지금은 ‘위그투 WGUT'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We Grow Up Together'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거창에 있는 사과나무를 분양 받아서 같이 그 과정을 지켜보는 프로젝트예요. 얘기하다보니 뭔가 되게 많네요.

무과수님이 하는 일은 다 재미있어 보여요. 그런데 회사도 다니면서 어떻게 그걸 다 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일상의 타임라인을 알고 싶어요.

제 본캐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죠. 평일에는 다른 분들과 똑같이 9시간 근무를 하는데, 그 앞뒤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아침엔 식사를 잘 챙겨먹으면서 저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 루틴을 좀 누리는 편이고, 퇴근하고 나서는 이런 인터뷰라거나 원고를 쓰거나 해요. 사실 뭔가 시간을 엄청 쪼개 쓰거나 시간 관리를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막상 풀어놓고 보면 별반 다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려면 처음 기획을 하거나 중간 중간 수습을 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해요? 

모든 프로젝트의 발단은 대부분 수다 떨다가 시작돼요. ‘위크투' 프로젝트도 식물을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식물 프로젝트를 작게 해보자는 얘길 하다가 클럽하우스에서 우연히 사과 농장을 하시는 농부 님 한 분을 만나게 돼요. ‘무과수랑 사과나무 잘 어울리는데?’라고 하면서 그렇게 인연이 돼서 사과나무로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한 거죠. 그러고 나니 디자인도 예쁘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아는 디자이너분과 같이 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저는 기획을 엄청 촘촘하고 디테일하게 한다기보다는 ‘재미있겠다, 해보자!’로 시작하는 식이 많은 것 같아요. 

무과수님의 책에 적힌 소개말을 보면 ‘일과 딴짓의 경계를 허물고 버무려지는 삶을 추구합니다' 라고 되어있어요. 일과 딴짓의 경계를 넘나들 때 어떤 나름과 기준과 방법으로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게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라기 보다, 저는 ‘스트레스를 왜 받는가’의 기준으로 늘 생각해보는 거죠. 뭔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혹은 잘 마음이 안 가는 부분이 있을 때 같은  자기만의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일상에서 제거한다면 일을 많이 하든 노는 걸 많이 하든 행복할 수 있지 않나 한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규모 있게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내가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속하고 있는가 인 것 같거든요. 저는 회사 일이든 프로젝트든 뭔가 선택할 때 재미가 중요한 우선 순위가 돼요. 일을 어떻게 재미로만 하냐고 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저는 재미가 있어야 신나서 뭐든 하거든요. 그러면 사실 나머지는 그냥 다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니까 마음의 짐도 좀 덜하고, 부담을 덜 가져서인지 다양한 걸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그래서 회사 일이냐 내 개인 일이냐의 경계가 그렇게 짙지 않아요. 저한테는 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그렇게 제가 버겁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가 맞춰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과수 님이 하는 것들은 다 다른 일인데 연결되어 보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그런 점이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갈 때 드는 에너지를 줄여주는 역할도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사실 바깥에 제 개인 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회사 일 하는 데도 다 쓰거든요. 개인이 하는 일은 작은 단위로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죠. 반대로 회사에 있는 장점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규모감 있게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개인 프로젝트로 작게 경험을 해보고 나면,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하게 됐을 때 ‘내가 이거 해봤는데 이런 점이 있더라, 이렇게 하면 좋더라' 같은 식으로 설득이 돼요. 내가 했던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니까 한 맥락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고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사이드 프로젝트도 마치 스펙  쌓듯이 꼭 해야할 것처럼 느끼게 하는 분위기도 있는 거 같거든요. 근데 무과수님은 보면 크게 부담을 느끼며 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정말 꾸준히 하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이어가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이 제 콘텐츠를 좋아해주는 것도 꾸준함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사실 정말 단순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고 싶어서 해야 부담 없이 할 수 있어요. 뭔가 해야할 것 같아서 하게 되면 ‘방법’을 찾게 돼죠. 왜냐면 잘 해야 될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또 방법이란 게 얼마나 많아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다르죠. 방법만 찾다보면 결국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달을 거예요. 

프로젝트라는 말을 써서 어려워보이지만, 저는 이게 결국 내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나는 무엇에 시간을 써서 무언가를 쌓고 있는가의 측면인 것 같거든요. 그게 꼭 내 커리어에 도움되지 않아도, 엄청난 성과가 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매일 산책하는 걸 사이드 프로젝트로 명명하고 매일 산책을 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죠. 그걸로 내 체력이 얼마나 올랐고 뭘 얻었는지 보다, 내가 기분이 좋았고 내가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에 동력을 받아서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순환이 되거든요. 

무과수님은 이렇게 그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일상 속에서 무리 없이 하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유심히 보면 혁신적이거나 실험적인 게 없어요. 반대로 말하면 굉장히 일상에서 누구나 할 법한 그런 것들을 하는데, 거기에 저만의 시선이나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밑미에서 리추얼 메이커로 하고 있는 활동도, 나한테는 별로 필요가 없는데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매일 잘 먹고 싶은 건 저도 하고 싶은 거니까 같이 하는 거죠. 모든 프로젝트에 저를 배제하지 않아요. 제가 중심이죠. 사과나무 분양도 제가 사과나무를 길러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지, 저는 사과나무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이런 콘텐츠를 하면 잘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게 아닌 거죠. 어떻게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사람들과 같이 한다'의  맥락으로 하다보니까 이게 일상 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없는 시간을 쪼개서 힘겹게 어디를 가야 된다거나 하면 에너지가 많이 쓰이잖아요. 저처럼 전부 제 집에서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어요.

그게 되게 좋은 포인트 같아요. 뭔가 자칫하면 점점 거창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서 나를 배제하지 않고 나도 행복한 것을 하는 게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집에서 얻는 일상력

우리가 일상력 이야기를 하는데, 일상에서 집 얘기를 안할 수 없잖아요.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무과수의집 이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오래 기록해오고 있어요.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첫 기록은 서울 상경하고 시작이 됐죠. 하지만 첫 집이 반지하에다 테이블도 없어서 캐리어를 테이블처럼 쓸 정도로 일상을 가꿀 기본적인 환경이 안되어 있어서 많이 기록하진 못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감나무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내 삶을 가꾸는 재미를 맛보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기록을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집이 훨씬 좋아졌던 것도 아닌데, 진짜 별것 아닌 창문 바깥에 나무가 있고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고 그걸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것도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건 아니었고요. 원래 일기를 써왔는데 SNS에 올리면 타임라인 형식이라 내 글을 다시 찾기 보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인덱스를 붙이듯이 해시태그로 표시해두기 시작한 게 #무과수의집 이예요. 그러다 팔로우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이걸 저에 대한 하나의 키워드로 봐주게 된 거죠.  

최근에 펴낸 <안녕한, 가>라는 책에도 ‘집 가'가 들어가죠. 책 앞 부분에 ‘집의 위로'라는 제목의 글이 있어요. ‘집이라는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이 참 좋다.’ 그만큼 집에서의 시간을 잘 가꾸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과수님은 집의 어떤 부분에서 위로를 받나요?

제가 부산이 고향인데, 서울에 혼자 올라와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니까 마음 둘 데가 필요하잖아요. 그게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집은 크든 작든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요. 낯선 것들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들로 하나둘 채워가면 밖에 있다가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늑함이 들잖아요. ‘아 내 집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중요해요. 어떤 특정한 인테리어 때문에 집이 의미있어진다기 보다는, 계속 이 집이라는 공간에 내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는 거죠. 내가 산 물건일 수도 있고, 내가 써내려간 노트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다 이 집안에 있는 거잖아요. 해외여행에서 사온 서랍장, 언젠가 사게 된 테이블 같은 것들이 다 뒤섞여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제 삶이고 제가 지나온 시간이잖아요. 그런 익숙한 것들이 있는 이 공간에서 위안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훌륭한 공간보다 제 집이 제일 좋아요.

요즘 ‘집’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더 많이 관심을 받았던 게, 코로나 이후에 모두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원치 않게 갑자기 그렇게 되다 보니 어떻게 집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 몰라서 답답함을 느끼고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많아졌죠. 무과수 님은 예전부터 집에서의 시간을 잘 가꾸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시간 동안에는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왔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도 외부 활동을 많이 하다가 갑자기 멈춰지면서 처음엔 좀 당황하긴 했어요. 어릴 때는 훨씬 취미생활도 많고 집에서 꽁냥꽁냥 뭘 많이 했거든요. 근데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일에 몰두하는 시간 많아지면서, 까먹은 거예요.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그래서 고민을 좀 하다가 시작했던 게, 음식 챙겨 먹는 거였어요. 장 보러 다니고, 레시피도 찾아보고, 요리도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요. 음식을 시작으로 식물도 집에 들이기 시작했고, 요즘은 뜨개질도 좀 하고요. 최근에는 유화 그림에 도전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그림을 그려야겠다, 화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저도 어릴 때는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했었고, 장래희망이 화가였는데 어느샌가 내가 뭘 좋아했었는지 다 잊어버린 것 같아요.

제가 한동안 ‘어른들한테도 놀이가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우리는 놀이를 아이의 것이라고만 치부하잖아요. 예를 들면 색칠공부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든지, 피아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나의 뇌를 쉬게 해주고 창의력을 키워주죠. 그래서 이건 아이들만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어른도 계속 해야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어릴 때 뭐했지?’를 통해서 힌트를 많이 얻고 그때의 시간을 다시 되찾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취미 조차도 목적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고, 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하다가 말 수도 있고, 또 다시 생각나면 하고 그래요. 최근에 그림 수업을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게 너무 좋았는데 그 이유가 지금 하는 이야기의 맥락하고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처음에 가면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방법을 알려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거든요. 근데 방법은 하나도 안 알려주고 그림을 그리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무명 화가부터, 우리가 알 법한 화가까지 얘기를 해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잘 됐는지를 얘기해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직업이 뭐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이걸 그렸을 거라는 얘기였죠. 그게 좀 저한테 센세이션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단의 수업이 끝났을 뿐인데도 마치 제가 어떤 화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은 한 사람이 되어서, 구애받지 않고 그리고 싶던 것을 그렸던 것 같아요. 잘 그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수업을 한번 들었다고 단박에 알 수는 없겠지만, 그날 그림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았죠.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게 다른 걸 할 때도 적용되는 이야기 같아요. ‘하우투’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게.

맞아요. 방법은 사실 뭐든 상관 없어요. 어떤 분야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법을 쓰면 안 되는 것도 별로 없죠. 예전엔 그런 걸 인정해주지 않았잖아요. 유명하지 않은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항상 나왔던 말이 욕을 많이 먹었다는 거였거든요. 요즘은 좀 덜 한가 하면, 분명히 전문가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전문 학위를 따고 그 분야에서 엄청 오래 공부를 해야지만 전문가로 쳐줬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경험을 많이 한 사람도 전문가라고 불러주는 세상이 온 것 같아요. 저도 그냥 제가 사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을 뿐인데, 집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초청되어서 강연을 하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 것처럼요.

집 이야기와 같이 또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게, 여행의 빈자리에 대한 거예요. 예전에는 일상이 좀 지치고 충전이 필요할 때 주말이라도 비행기표 끊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는 직장인이 많았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렇게 쉽게 떠나기도 어려워졌죠. 무과수님도 여행을 많이 다녔던 사람으로서, 여행에서 얻던 에너지를 일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 해소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해외 여행을 못 가는 대신, 동네를 여행했어요. 그 전에는 동네에 대해서 잘 안다 모른다에 대한 생각 조차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쉽게 어디를 갈 수 없게 되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내 두 다리로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영역을 찾게 되었고, 그게 동네였더라고요. 이웃에 사는 친구가 산책을 좋아해서 같이 동네 산책을 많이 하게 됐죠.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는 스마트폰 지도를 보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 동네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 범주가 엄청 늘어나서 그게 너무 행복해요. 웬만한 거리는 그냥 다 걸어다니거든요. 신기한 게, 맨날 걷던 동네라도 안 들어가 본 골목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 골목을 한 번만 들어가 보면 여행다니는 것 같아요. 결국 여행이 왜 좋았나 보면 똑같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벗어나 낯선 경험을 주기 때문인데, 해외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그걸 여기서 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울적할 때 가고 싶은 스시집, 퇴근하고 혼술하고 싶은 치킨집도 생겼어요. 그만큼 동네를 잘 누리고 있는 것 같고 공간에도 제 일상이 융합되니까 점점 감정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동네가 더 좋아져요. 더 발견하고 싶고. 

#나의 안부를 묻는 한끼

아침마다 일상을 단단하게 해주는 무과수님만의 리추얼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중에서도 ‘나를 위한 한끼'를 차려 먹는 리추얼이 궁금해요. 

온라인에서 스무 명 정도 모여서 하루 중에 한 끼를 건강하게 챙겨먹는 모임이에요. 꼭 요리를 해야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될 수도 있잖아요. 대신 밖에서 음식을 택할 때라도 자극적이고 감정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좀 더 나를 위해 뭘 먹을지를 생각해보자는 거죠. 내 건강과 내 안녕을 위해서는 한 끼 한 끼가 매우 중요한데, 그 한 끼를 조금이라도 의식을 가지고 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먹는 것은 원래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인데,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먹을 때와 의식적으로 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예전에 저도 허겁지겁 때우면서 살 때는 삶의 중심이 저한테 있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끌려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정신이 없었죠 항상. 또 다음날 아침이고, 또 출근하고. 하루하루가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찌저찌 지나가는 느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식사 시간을 온전히 마련하려고 노력을 하고, 음미를 하면서 음식을 먹는 시간을 많이 마련하면 할 수록 나를 위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적으로도 굉장히 여유가 생겨요. 예전에는 일어나서 빨리 씻고 나가기 바빴죠. 머리도 안 마른 채로 나가서 책상에 앉자마자 바로 하루를 시작했죠.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도 열고 환기도 시키고, 이불도 털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라디오 들으면서 아침도 준비하고, 햇살이 내리쬐는 테이블에 앉아서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시고, 내가 차린 아침을 꼭꼭 씹어먹어요. 이런 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한 사람은 하루의 밀도가 다르죠.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도요. 예전에 비해 일하는 게 달라지지 않았어도, 단지 아침에 일어나 끼니 한 끼 챙겨 먹었을 뿐인데 ‘나 오늘 하루 너무 잘 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니까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유해지죠. 이미 하나를 성공한 느낌이니까. 그런 게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이것도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잖아요. 같이 했을 때의 장점은 뭐예요?

사실 처음에 시작할 땐 제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제가 도움과 위로를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의 안녕과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근데 이 리추얼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는 매일 좋아하는 노래도 공유하고, 행복한 순간도 공유하고, 누가 힘들다고 하면 우르르 달려가서 응원해줘요. 그걸 매일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심지어 그 모임을 이끄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벅찰 때가 있어요. 예전부터 제가 ‘무과수 마을’ 만들고 싶다고 많이 말했었는데, 그땐 물리적인 마을을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이걸 하면서 ‘이미 만들고 있네’ 싶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 꼭 옆집에 사는 게 아니라, 언제고 마음 둘 데가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비난이 아닌 응원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거였는데, 이미 그러고 있더라고요 제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니까 종종 벅차오르는 것 같아요.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무과수 님을 통해서 나를 위한 한끼를 먹는 리추얼을 처음 해보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변화가 있던가요?

사실 저는 처음에 정말 가볍게 ‘우리 건강한 한끼 잘 챙겨 먹어요!’라는 마음으로 열었는데, 거기에는 우울증이 심한 분, 거식증, 식이장애, 강박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까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오셨어요. 근데 저는 상담가도 아니고 치료사도 아니라, 처음에 그런 걸 그분들이 고백했을 때 ‘어떻게 하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같이 밥 한끼를 챙겨먹으면서 한 달 두 달 세 달을 지나가니까 변화하는 게 보이는 거예요. 처음엔 마음도 소용돌이 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는데,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안정이 된 것 같고 심지어 지금은 제가 힘들 때 그 분이 위로를 해주거든요? 그때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에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진심이 되는 것 같아요. 

다른 게 위로가 아니라, 작은 한끼처럼 내 일상을 같이 해줄 수 있는 거야 말로 요즘 시대에 가장 흔하지 않은 큰 위로가 아닐까 싶어요. 

이 모임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얘기를 전혀 안해요. 그냥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존재하죠. 여기에서 만큼은 일이 잘 되고 돈을 얼마를 벌고 그런 것을 벗어나서 정말 삶의 기본을 잘 챙길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해주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무과수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잘 발견하고, 스스로를 잘 위로할 줄 아는 사람 같아요. 요즘은 환경적인 변화 때문에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하죠. 이런 시대일 수록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힘이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런 일상의 힘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럴 때일 수록 나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극복하는 방법을 쫓는 게 아니라요. 저도 번아웃을 겪고 되게 무기력한 시간이 있었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 저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저도 당황했어요.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 어?’ 하면서 지나갔었는데, 그 뒤부터는 ‘그냥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왜 그러지?'가 아니라, ‘그러고 싶다보다'라고 하는 거죠. 눈물이 나면 ‘울고 싶은가 보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싶은가보다' 라고 하면서 내 스스로를 옥죄지 않고 지금은 내가 그러고 싶나보다 라고 나 자신을 인정을 해주니까, 내 마음도 그게 고마워서인지 착 풀리더라고요. 너무 나를 몰아세우거나, 내가 왜 이런 일을 겪게 됐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은 내가 그러고 싶은가보다’라고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걸 이겨내겠다' 이런 마음도 필요 없어요. 보통은 그렇게 힘들 때 밥도 잘 안 챙겨 먹게 되고, 배달 음식 먹거나 폭식하게 되고, 불규칙한 패턴으로 살게 되잖아요. 그냥 오늘 밥 한끼 잘 챙겨 먹어야지, 잠 잘 자야지, 산책도 좀 해야지 같은 마음으로 정말 별것 아닌 삶의 기본 행위들을 계속 반복해서 잘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그게 보통의 일상이잖아요, 그게 어려운 거지만. 조금만 더 용기 내서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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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 무과수

본명은 황다검. 필명 무과수는 어루만질 ‘무’, 열매 맺는 나무인 ‘과수’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과 딴짓의 경계를 허물고 버무려지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에어비앤비 공식 블로그를 운영하며 떠도는 삶에 대해, 오늘의집 에디터로 일하면서는 머무는 삶에 대해 고찰하며 주거에 관한 생각을 자신만의 콘텐츠로 풀어내고 있다. 자연 가까이 무과수의 집을 짓고 다양한 형태로 공생하는 마을을 만드는 꿈을 꾼다.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 책 <집다운 집>, <안녕한, 가>를 썼다.

interviewer 혜민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토리파인더'라는 직종을 스스로 붙여주었다. 직장인으로 6년, 프리워커로 6년째 살고 있다. 서른이 되던 해 결혼식 대신 짝꿍과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42일간 함께 걷고 돌아와 부부이자 동료가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를 꾸리고 책과 영상을 넘나들며 새로운 선택지를 탐구하는 콘텐츠를 만든다.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동명의 인터뷰집을 펴내는 에디터이자 작가.

𝘽𝙀𝙏𝙏𝙀𝙍 𝙉𝙊𝙍𝙈𝘼𝙇 시리즈는 뉴노멀보다 더 나은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매달 새로운 주제, 매주 새로운 인터뷰로 찾아옵니다.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저작권법 보호조치에 따라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