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일상이라면 언뜻, 규칙 없이 자유롭게 살다 불현듯 멋진 영감의 열매를 따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리추얼>이라는 책을 보고 어떤 위대한 창작물도 특별한 일탈의 순간이 아닌 가장 보통의 시간, 각자만의 꾸준한 루틴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그림을 매개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는 크리에이터 이연. '일상력'이라는 주제를 찾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이연의 드로잉과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 기간의 반복을 거쳐 마침내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드로잉처럼, 단단히 정돈된 생각들에는 보편의 고민을 꾸준히 갈고 닦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부러워하던 회사를 퇴사한 후, 오히려 자신에게 꼭 맞는 안정을 느낀다는 이연. 그의 일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소속된 나를 위해, 내 몸과 마음에 꼭 맞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최적화된 하루를 배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꾸준하고 건강하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을 터득해나가고 있는 이연만의 ‘일상력’에 대해 나눴다.

글 | 이혜민


#우리의 아침은 밤보다 고요하다

이연님이 시간을 쓰는 방법이 인상적이었어요. 하루를 크게 둘로 나눠서 사용한다면서요?

아침부터 점심까지를 내 시간으로 쓰고, 점심 이후를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쓰고 있어요. 점심 전에는 핸드폰 연락도 안되는 개인 시간 모드예요. 이렇게 하게 된 이유가, 늘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를 생각해보는 편이거든요. 시간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가장 중요한 시간과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추려본 거죠. 

어릴 때는 저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잖아요. 근데 20대 이후부터는 저에 대한 게 파악이 조금씩 되더라고요. 나라는 사람은 이 시간대에 참 고효율이다, 이런 일은 좀 더 보완해야하고 이런 건 덜 해도 된다 같은 데이터가 나온 거예요. 마치 유튜브와도 비슷한 것 같아요. 하다보면 어떤 콘텐츠가 잘 되고, 유입이 많이 되는 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몇 가지를 추려본 바, 되게 행운인 게 제가 아침에 잘 맞는 아침형 인간이더라고요.

아침형 인간이라는 걸 발견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거예요?

네, 저도 그걸 짐작을 못하고 살았어요. 그냥 아침에는 다 피곤하지 않나 했는데,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언니랑 동생은 자고 있는데 저 혼자 일찍 일어나 있었거든요. 회사 다닐 때도 새벽에 수영을 다녔는데 나쁘지 않았고. 학교 다닐 때도 야작을 한다고 하면 저는 무조건 그냥 싸와서 집에서 했어요. 밤에 뭔가 하는 걸 힘들어 했던 기억이 많아요. 근데 저는 예체능 쪽이니까 친구들이 다 밤에 안 자요. 그래서 저도 그런 아침형 인간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침형 인간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보통 세간에 ‘어떻게 아침에 잘 일어나, 아침형 인간은 소수야'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게 본인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군요.

네, 그게 좀 큰 기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중요한 일들을 해야겠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건강이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그건 한 번 잃어봐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직장생활하면 평소에 몇 번씩 잃어보잖아요.(웃음) 근데 이건 절대 남이 챙겨주지 않는 거죠. 그래서 건강에 관련된 운동 같은 것을 아침에 배치를 하고요. 또, 창작이야말로 진짜 미루기 쉽더라고요. 내 삶에서 자꾸 미루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침에 다 한 다음에, 낮에는 ‘살아내는 삶'을 살고 저녁에는 좀 쉬자. 이렇게 하다보니까 되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효율이 엄청 높아졌죠. 근데 이것에 대해 요즘 드는 생각은, 고효율이긴 한데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거예요.(웃음) 요즘은 내 복지를 챙기면서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법이 있어도 국회가 있는 것처럼, 제 리추얼을 계속 점검하고 수정하는 거죠.

나에게 주는 복지가 뭘까 고민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일을 이것저것 많이 하니까 방해받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내가 원래 하려던 걸 자꾸 미루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누가 요청한 일들과 처리해야할 일들이 생각나서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수렁으로 빠지듯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요. 저녁이 되면 눈도 침침하고 뭔가 할 에너지가 없고. 계속 이런 게 반복되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딱 나눠놓고 하는 것도 되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머리가 좋을 때 내 일을 먼저할 수 있기도 하고요. 남의 일은 밤 늦게라도 하게 돼 있어요.(웃음) 그렇잖아요? 안 하면 안된다는 걸 피곤한 눈도 알고 다 아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들 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에는 조용해서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침이 진짜 조용하다는 거. 오히려 밤에 연락하기가 쉽고 아침엔 서로 연락 잘 안 하거든요. 아침이 압도적으로 조용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네요.

근데 처음엔 오전 내내 전화를 꺼놓는 게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나 그 사이에 중요한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도 ‘모드'를 좀 설정하는데요. 제 카톡 상태메시지가 ‘연락 잘 안됩니다' 예요. 메일 보낼 때도 전화를 꼭 주셔야 되고 연락을 못 받을 수 있다고 써둬요. 좀 어려운 사람이 되기로 한 거죠, 그냥 컨셉적으로.

#자유를 잘 쓰는 법

이연 님은 지금 소속이 없고 혼자 사시잖아요.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자유로울 것 같다, 내 마음대로 하루를 흥청망청 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자유를 잘 쓰는 것도 되게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이연 님도 의외로 엄청 촘촘하게 계획적으로 살고 계시잖아요.

저는 사실 퇴사하고 나서는 제가 소속이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회사에 있을 때 이게 내 소속인 게 좀 더 불안했어요. 나는 여기에 잘 맞지 않는데… 뭔가 어색한 애인과 사귀는 느낌? 근데 그 친구가 스펙도 좋고 얼굴도 괜찮고 나한테 잘 해줘. 누구 주긴 아까운데 내가 그 친구를 엄청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 관계 있잖아요.(웃음) 저는 전 회사가 좀 그랬어요.(이연의 전 직장은 스타벅스 코리아) 그냥 명함인데 친구들이 ‘네 명함 가져갈래' 그러고, 백화점 가면 임직원 할인도 되고. 정말 다 좋은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 

근데 지금 저는 도리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에게 진짜 안정감을 주는 소속은 나 자신일 수도 있겠다. 저 같은 사람한테는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저한테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것들을 제게 맞게 뿌리를 내리니까 엄청 안정이 되더라고요. 지금 제 사업자 이름이 이연 스튜디오인데, 이렇게 하나의 사업체로 만들어 놓으니까 이게 또 분리가 되는 거죠. 내가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를 내가 만들어버린 느낌, 엄청 좋아요. 그 안에서 제 취향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선택한다는게 되게 즐거운 자유이자 규칙이에요.

내가 나에게 소속됐다는 말, 진짜 와닿아요. 저도 제 일을 제가 만들어서 하는 것에 만족도가 굉장히 높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소속됐으니까 나에게 맞는 것들을 잘 찾아주자고 한다는 거잖아요.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나를 위해 잘 일어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거나, 추위를 잘 타는 나를 위해 두꺼운 옷을 침대 맡에 바로 준비해둔다거나. 꽤 디테일한 처방들을 마련해두었더라고요.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들로도 하루가 바뀔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추우면 뭘 잘 못해서 예전엔 퀄팅 패딩을 입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무거워서 요즘엔 과장님 같은 경량 패딩, 대리님 같은 경량 조끼를 더 많이 입고요. 그거 딱 하나 입으면 몸에 온기가 돌면서 예열되는 느낌이라 아침을 잘 시작할 수 있어요. 눈이 좀 건조한 편이라 가습도 많이 신경 써요. 물도 좀 많이 먹으려고 하고요.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사실 그런 거예요. 제가 이연 스튜디오의 사장이자, 직원이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잖아요. “대표님이 내일 못 일어나실 수도 있어.” “대표님 물 갖다놔야 돼.” “대표님 요즘 자꾸 뭐가 나는 것 같던데 비타민이 부족하신 게 아닐까?” “우리 대표님 아침에 연락 잘 안돼" (웃음) 이런 식으로 저는 ‘대표님 기법'을 쓰는데, 이거 되게 좋아요. 저를 좀 거리를 두고 보는 거죠, 메타인지처럼. 제가 대표이긴 하니까. 그러니까 누굴 위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친절해지잖아요. 자기 자신한테는 박하기 쉬우니까, 저를 대표님이라고 생각하고 직원처럼 준비해놓는 거죠.

너무 재밌다.(웃음) 저는 그것도 인상 깊었어요. ‘아침에 잘 일어나고 싶으면 해를 눈에 넣어라.’ 제가 원래 아침에 정말 못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다음 날부터 정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가서 해를 넣었더니 진짜 조금씩 일어나는 게 수월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아침 6~7시에도 잘 일어나요. 늘 아침에 일어나라고만 하지 그걸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에 대한 건 아무도 말 안해주는데 이런 자잘한 팁이 좋더라고요.(웃음) 내가 정말 의지 박약한 인간이 아니라, 뭔가 환경적으로 부족한 게 좀 있어서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거죠.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거고요.

대표님 의사를 안 물어봐서 그런 거죠. 사실 그걸 얼마나 많이 찾아내는가에 삶의 행복도가 달려있는 것 같아요. 행복이라는 게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관심을 기울였는가'인 것 같거든요. 정말 나를 위한 장치들이 있을 거란 말이죠. 근데 다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하니까 잘 안되죠. 리뷰를 보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부턴 리뷰를 덜 보기로 했어요. 차라리 내가 리뷰를 쓰는 입장이 되자, 해보는 입장이 되자.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도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 있겠지만 이건 진짜 100% 제 맞춤형거든요. 제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여러분도 여러분 것 찾으세요.”예요. 도움은 확실이 된다고 봐요.

#성실하진 않지만 꾸준하게

아침 시간을 창작과 배움의 시간으로 채운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어떤 걸 배우고 있나요?

요즘 타투를 배우고 있어요. 이제 다음주면 12주차가 돼서 곧 졸업 작품을 해요. 구독자분 중에 되게 유명한 타투이스트 분이 계셔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시작됐어요.

뭔가 한 분야에서 전문성이 생기고 나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걸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되면 새롭게 뭔가 배우려는 시도를 잘 하지 않게 되죠. 이연 님은 요즘 그림도 다시 배운다고 들었어요. 배움을 계속 곁에 두는 게 이연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저는 계속 배우는 사람이 젊음을 유지한다고 생각해요. 젊음이라는 게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계속 성장할 여지가 있는 게 젊음인 것 같거든요. 나무나 식물도 계속 잎이 자라나고 커지고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은 고목이라도 젊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뭔가 배울 때 본인의 미숙함을 마주하잖아요. 근데 그 조차도 어떤 젊음인 거예요. 내가 이 분야에서는 아직 어리고 젊다는 것. 그때 느끼는 감각도 좋고, 뭔가 배우면서 뇌를 쓰는 느낌도 좋고. 제가 젊어지고 싶어서 피부 시술을 해본 적은 없지만, 공부는 되게 좋은 시술인 것 같아요.

그런 걸 ‘초보심’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초보심을 갖는 게 뭔가를 계속 지속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책에서도 ‘잘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이란 말도 나오고 ‘작업을 매일 지속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라고도 하더라고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림을 매일 그리진 않아요. 제가 성실함을 타고 나진 않았거든요. 그러기에는 다양한 것들에 호기심도 많고 재밌는 게 많다보니 바쁘거든요. 매일 매일 하진 않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계속 하고, 오래 해요. 각자 매일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매일에 텀을 좀 둔 거죠. 이것도 어떤 사람에겐 매일이 될 수 있는 거고요.

매일 하진 않지만 꾸준히 한다는 뜻이네요. 사실 꾸준히 하라는 얘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이렇게 한다고 정말 뭐가 달라질까?’ 근데 이연 님에게는 그걸 체감하게 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꾸준함의 힘을 믿게 된 계기 같은 거요.

한 번에 하나씩 팍, 팍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재밌는 삶을 살죠. 근데 저는 에너지를 한 번에 쏟는 걸 잘 못하고 이것 저것 낚싯대를 많이 두는 타입이에요. 성실해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이 낚싯대 여러 개를 두고 오래 있다보니까, 그냥 거기에 발을 오래 담그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참 많더라고요. 우리가 무언가를 잘 하려면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꾸준히 하면 노출이 많이 되니까 익숙해질 시간이 많죠. 그러면 그것에 대한 부담이 좀 덜게 되고요. 부담이 덜면 좀 더 열심히 해볼 수 있게 되죠. 부담스러우면 잘 못하니까.

그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뭔가를 잘 하고 싶을 수록 부담이 크고, 할 때마다 좀 무섭거든요. 책을 쓴다든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진짜 많이 했는데도 저는 할 때마다 또 긴장이 돼요. 잘 하고 싶어서. 그래도 좀 자주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은 익숙해지면서 그 두려움의 수치가 낮아지는 것 같아요.

제가 유튜브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게, 오히려 단순해요. 장벽을 낮추고 계속 부담을 낮추는 거예요. 그래서 장비도 업그레이드를 안 해요. 그래야 뭔가 떠올랐을 때 바로바로 녹음하고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제가 이걸 좀 재밌게 하겠더라고요. 근데 만약 이걸 하기 위해 뭘 설치해야 되고 사람을 만나야 되고 하면 저는 못하거든요. 저는 이렇게 인터뷰 채널 하시는 게 너무 존경스러운 게, 제가 인터뷰도 시도를 해봤었어요. 근데 그걸 영영 편집하기가 싫은 거예요.(웃음) 그러니까 사람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역치가 되게 낮은 편이더라고요. 용량도 에어드롭이 될 만큼 가벼워야 되고, 효과음도 다 배제하고. “대표님 이 정도는 하실 수 있죠? 아님 이 정도는?” 하는 식으로 저를 어르면서 하는 거죠.

‘매일, 꾸준히’의 단점은 곧 지루해진다는 것 같아요. 매일 같은 루틴으로 일상을 살다보면, 단단해질 수 있겠지만 어느 순간 삶이 무척 단조롭게 느껴지고 자꾸 딴 생각이 든다는 거겠죠. 이런 걸 이연 님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요즘 지루해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침마다 먹는 그릭 요거트예요. 아몬드를 좀 바꿔볼까? 그릭요거트 가게를 바꿔볼까? 그랬더니 지금은 조금씩 더 맛있어졌어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거죠. 근데 그게 저는 되게 좋은 신호 같아요. 변주를 줄 때가 된 거죠. 

요가 같은 것도 지겨울 수 있는데, 그냥 느끼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바뀌어 있나를. 제가 예전에 수영 학원을 다닐 때 샤워를 하면서 옆에 아주머니들 대화를 엿들었어요. 한 아주머니께서 이런 얘길 하는 거예요. “맨날 같은 데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고 반복만 하는 것 같아요. 왜 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그랬더니 그 옆에 할머니가 “그냥 똑같은 것만 하는 것 같지? 그 모든 게 똑같은데 나는 계속 달라져"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말이 엄청 좋더라고요. 이 루틴함 속에서 내가 얼마나 변했지 보는 게 새삼스러운 발견인 것 같아요.

그 변화를 느끼기 전에 그만 두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도 1분 달리기를 계속 하다보면 나중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다고 해서 해봤었는데, 중간에 자꾸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몸의 모습이든 몸무게가 됐든 어떤 형태로든.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아야 ‘아 이게 변하는 일이구나'가 느껴지거든요. 근데 그게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으면 볼 수가 없죠. 그래서 저도 그림일기도 그리고 글 일기도 쓰는 거 같아요.  

#일희일비하는 마음

일상을 단단하게 하는 데에 또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저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인 것 같아요. 내 뜻이나 계획과 상관없이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 게 일상이잖아요. 상황에 따라 기분과 마음이 좌지우지 되면서 하루를 망쳐버리기도 하죠. 이연 님은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제 MBTI가 극도의 J인데, 엄청나게 계획을 잘 세우면 변수가 잘 안 생겨요.(웃음) 저는 그 변수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다 세워두거든요. ‘이렇게 안 됐을 시엔 이거' 처럼 다 있기 때문에.

정말요? 그럼 변수가 생겨도 마음이 1도 흔들리지 않고요?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계획 안에 있어요. ‘내 마음은 원래 잘 흔들려'를 계획 안에 넣어놓는 거죠. 내 마음이 안 흔들릴 거라고 계획하면 그게 틀린 계획인 거예요. 내 마음은 원래 잘 흔들리고, 원래 아주 여우 같고, 아기 같고, 정신 사납고… 이게 내 마음이야. 이걸 알고 계획을 짜야 돼요.

와, 이건 정말 다른 생각이다. 저는 늘 ‘내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잘 컨트롤 해봐야지. 고요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제 모든 계획은 저에 대한 불신이에요. ‘얘가 아침에 일어날까? 이거라도 해놔야지..’ ‘얘가 해라도 안 보면 살아가겠어?’ 하면서 정말 못할 수도 있는 나를 위한 충분한 쿠션을 엄청 많이 마련하는 거예요. 뛰어내리려고 할 때 다칠 수도 있잖아요. 얘가 잘 뛰어내릴 수 있도록 ‘빨리 쿠션 다 가져와! 다 끌어모아!’ 이런 느낌인 거죠. 망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계획이 세워져요.

구독자가 많아지고 유명해지면 주변의 평가도 많아지잖아요. 영상에 달리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받는 일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 그런 것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궁금해요.

최대한 통제 범위에 두려고 해요. 유튜브에 댓글 차단 기능이 있잖아요. ‘사용하라고 개발했으니 내가 이걸 사용하면 개발자가 뿌듯할 거다' 라는 생각으로 적극 활용해요. 아시잖아요. 악플은 앞에 두 글자만 읽어도 악플의 향기가 나요. 길게 읽을 필요도 없어요. 최대한 흐린 눈으로 보다가 지우는 버튼을 눌러요. 그렇게 그냥 바로바로 해결하려는 편이고요. 그러니까 나에게 주는 상처나 고통을 제가 다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찔리기 보다는, 피하고 흘려보내는 거죠.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과 동명의 영상을 만들면서, 그걸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어요. 그걸 보고 이연 님도 뭔가를 할 때 불안하기도 하고 겁이 나는 건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저는 불안할 때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봐요. 그러면 다들 아무 생각 없어보이거든요. 근데 사실 그 사람들도 다 불안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 불안함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만으로도 위로가 많이 돼요. 각자의 불안이 있고 당연한 거구나.

이런 얘기를 들을 수록 이연 님이 자신에 대해 사유를 깊게 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다른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는 식’으로 독서를 한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맞아요. 그래서 되게 다양하게 읽어요. 요즘엔 돈에 대한 책이 너무 재밌어요. 돈 버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돈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적인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요. 왜 돈이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고, 왜 이게 삶의 땔감이 되고 이렇게까지 중요한 것인지. 그러니까 돈이란 사람들을 해석하는 어떤 키인 거죠. 만약 외계인이 와서 지구인을 분석할 때 돈에 대한 책만 쥐어줘도 지구인들이 어떤 심리로 움직이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보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흥미가 생겨서 돈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고요. 마음을 공부하는 책도 많이 읽어요. 심리학 서적보다는 영혼에 대한 책들인데, 저는 종교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그런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현재를 살아라’ ‘존재하는 건 현재 밖에 없다' 그런 걸 보면 신기하고 그게 진리인 것 같아요.

이연 님이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 읽고 이야기하는 영상을 저 정말 좋아하거든요. 계획형 인간들이 되게 미래까지 걱정하느라 현재에 집중해서 살기가 힘든데, 오늘 하루만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와닿았어요. 그런 식으로 얻은 힌트들로 최종적으로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뭐예요?

제가 되고 싶은 어른은 진짜 재밌게 살아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른 하면 뭔가 재미없게 산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른이야말로 재밌는 걸 더 많이 해볼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학생 때는 여러 면에서 그게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내가 재미있고 나한테 좋은 거 많이 해주고 싶어요. 저는 오은영 선생님 영상 보면서, 자식과 인간관계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를 저한테 적용시켜보거든요. '그럼 나한테 어떻게 해줘야 할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면서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보통 남한테도 친절한 것 같아요. 그게 지금 제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이에요.

잘 쉬는 것도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하잖아요. 저녁에는 보통 쉬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려면 저녁이 일찍 시작될 것 같아요. 저녁 루틴은 어떻게 되세요?

요즘에는 저녁 9시에 알람을 맞춰놔요. 물론 요즘 거리두기 때문에 9시면 가게 문이 닫긴 하지만, 저는 사무실도 있고 다른 데서 친구를 만나다보면 9시가 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면 미라클모닝이 잘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를 만날 때도 거의 신데렐라처럼 9시 땡 되면 가야된다고 얘기하고 택시를 타든 뭘 하든 해서 10시쯤엔 집에 도착하려고 해요. 그리고 11시에는 방에 조도가 됐든 몸의 청결도가 됐든 잘 수 있는 상태를 만들려고 하고요. 핸드폰 보다가도 ‘이러다 너 미라클모닝 못해~' 하면 자는 거죠.

혼자 사는데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웃음) 그만큼 이연님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나에게 맞는 일상을 자신에게 제공해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오늘 인터뷰 주제가 ‘일상력'이었는데, 이것도 결국 어떤 기가막힌 해법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본인이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잖아요. 내 몸과 마음이 내가 기대한 것과 달라서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자신을 잘 알고 싶은 사람, 나에게 맞는 일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최근에 집 청소 서비스를 구독했어요. 제가 집을 깨끗하게 해놓고 사는 편이긴 하지만 화장실이나 주방 청소를 열심히 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을 도움을 받으려고 부른 건데, 또 청소를 맡긴 입장에서 ‘그 분이 보셨을 때 내 방이 어떨까?’ 하면서 제가 청소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느낀 건, 낯선 사람이다 생각하고 내 방을 보면 나라는 인간이 좀 보인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청소를 시켜놓고 자기가 청소를 해놨네? 약간 쫄보다.'(웃음) 같은 거죠. '방에 색깔이 몇개 없는 걸 보니 컬러에 대한 기준도 있고 심플한 걸 좋아하는 구나.' '초상화가 두 개나 있는 걸 보니 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자기애가 되게 많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낯선 사람의 시선으로 자기 방을 한번 돌아보면 좋겠어요. 거기에 엄청 많은 힌트가 있거든요.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좋은 힌트가 돼요. 내가 만나는 사람 셋의 평균값이 나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나는 어떻지?’하면서 보기보다는 그냥 내 주변에 놓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보면서 자기를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엄청 재미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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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이 추천하는 ‘일상력’을 위한 도구

interviewee 이연 

펼 연(演) 자를 쓴다. 이름처럼 사는 삶을 꿈꾼다. 5평 방의 월세 45만 원을 내기 위해 6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퇴근 후에는 혼자 그림을 그렸고 비싼 미술도구가 부담스러워 주로 네임펜과 매직을 썼다. 부모님이 투자한 미술 교육비가 아까워 유튜브를 시작했다. 2년 만에 독보적인 미술 크리에이터로 성장하여 현재 6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가 되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강연자로 살고 있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썼다.

interviewer 혜민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토리파인더'라는 직종을 스스로 붙여주었다. 직장인으로 6년, 프리워커로 6년째 살고 있다. 서른이 되던 해 결혼식 대신 짝꿍과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42일간 함께 걷고 돌아와 부부이자 동료가 되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를 꾸리고 책과 영상을 넘나들며 새로운 선택지를 탐구하는 콘텐츠를 만든다.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동명의 인터뷰집을 펴내는 에디터이자 작가.

𝘽𝙀𝙏𝙏𝙀𝙍 𝙉𝙊𝙍𝙈𝘼𝙇 시리즈는 뉴노멀보다 더 나은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매달 새로운 주제, 매주 새로운 인터뷰로 찾아옵니다.



*본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저작권법 보호조치에 따라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